[취재수첩]지자체 소싸움, 전통인가 학대인가
[취재수첩]지자체 소싸움, 전통인가 학대인가
  • 박상규 기자
  • 승인 2023.03.08 2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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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언스플래쉬
사진=언스플래쉬

800kg에서 1.2톤 정도 되는 두 마리의 황소가 서로 뿔로 맞대고 싸운다. 순식간에 황소 한 마리가 머리를 빙빙 돌며 도망치고, 관중들은 크게 환호한다. 우리나라에서 투우는 사람과 소가 경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두 마리의 투우가 길게는 30분 동안 싸우는 방식을 취한다. 고개를 돌리거나 도망가는 황소가 패자가 된다. 황소는 피를 흘리거나 뿔이 부러지기까지 한다. 이 문화는 경상북도 청도군과 전북 정읍 등 남부 지역에 남아 아직까지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에서 동물권리의 중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사람들이 오락을 위해 동물들을 억지로 싸우게 만드는 것이 학대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투우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는 투우가 지역 관광 활성화에 필수적인 전통문화라고 주장한다.

동물복지협회 사람들은 “소는 싸움을 싫어하는 것이 본성이지만, 시합에서 머리와 뿔을 맞대야 하고 망가져서 불필요한 고통을 겪는다. 과거부터 이어져왔다고 해서 미래에 전승해야 할 가치가 있는지는 별다른 문제”라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 투우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기원전 57년부터 서기 668년까지 한국의 삼국시대에 처음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학자들은 마을 축제 때 농사의 끝을 축하하는 행사였다고 추측한다.

동물권 운동가들은 '비인도적인 방법'으로 투우를 키우고 싸움의 결과를 도박으로 내세우는 것이 과연 마을 화합을 추구하는 전통과 관계가 있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투우사로 선발된 소는 생후 7개월부터 혹독한 사육 과정을 거쳐야 하고, 콘크리트를 채운 타이어를 뽑고 산을 달리는 등 지구력을 키워야 한다.

이렇게 키워낸 투우 소는 평균 5년 동안 경쟁한다. 그러면 전투력이 쇠퇴한 늙은 소는 어떻게 되는가. 한때 명예와 보살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도살된다.

경남 청도 정읍 진주 등 11개 지자체가 투우를 이어가고 있다. 청도는 경기장을, 진주는 겨울을 제외하고 매주 토요일 경기를 한다. 다른 지역은 1년에 1~2회 경기를 개최한다. 지방자치단체는 스페인의 투우처럼 황소를 죽이는 것이 끝이 아니라는 점에서 전통이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가 뒤로 물러나 도망가면 경기가 끝나기 때문에 학대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투우를 장려하는 것은 지역 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이 경기는 관광객을 유인할 수 있고 현행법상 '토속놀이'로 간주돼 합법적인 도박을 허용할 수 있다. 현행 동물보호법은 '도박·광고·오락·오락을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가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투우 등 '토속놀이'에 해당하는 것은 제외하고 있다.

경북 청도에서 투우장을 운영하는 청도공기업은 투우장으로 돈을 번다. 팬데믹으로 인한 셧다운 이후 4년 만에 재개장한 2022년 매출은 296억원(2277만 달러)에 달했다. 관광객들은 소싸움을 관람한 후 주변 음식점과 관광지를 방문해 지역에 추가적인 이익이 발생한다.

동물권단체는 투우를 민속놀이로 규정한 현행 동물보호법 개정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사실상 스페인에서는 2012년부터 투우 경기가 열린 적이 없다. 형태는 다르지만 한국의 투우도 소를 학대하는 명백한 행위라는 의견도 나온다.

투우 경기는 과연 전통인 것일까, 동물 학대의 범주에 속하는 것일까. 지방자치단체의 고민은 갈수록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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