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를 즐기는 와룡벌꿀농원의 이장용 대표
풍류를 즐기는 와룡벌꿀농원의 이장용 대표
  • 지방자치저널
  • 승인 2015.02.11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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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받는 삶을 살고자 노력한 진정한 ‘아버지’



‘아버지’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한 논어의 첫머리에 나오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學而時習之不亦說乎아)를 몸소 실천하며 삶을 즐기는 범인, 와룡벌꿀농원의 이장용 대표를 찾았다.


70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아랑곳없이 3,000여 평의 땅을 일구며 꿀벌과 함께 10여 년을 보낸, 풍류를 즐길 줄 아는 벌꿀의 장인 이장용 대표는 멀리 경상북도 안동까지 찾아간 기자를 반갑게 맞이했다.


늦가을에 찾아간 농원은 다소 황량해 보였지만 이 대표의 휴식처이자 서재에 들어서자 눈앞에 쌓여진 책과 아코디온 그리고 붓과 벼루며, 한문으로 직접 쓴 글을 액자에 담아 걸어놓은 품세가 절로 풍류를 즐길 줄 아는 학자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글, 사진/ 서원진 기자>



내 고향은 ‘경상도 안동’



대표의 고향을 굳이 따진다면 중국 만주라고 할까?


중국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셨던 아버님은 그곳에서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었으나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광복을 맞이한 부모님은 가족 모두를 데리고 이주하여 충북 예천에 삶의 터전을 잡았다고 했다.



“저의 유년기의 추억은 모두 그곳 예천에 있어요. 17세까지 예천에서 살았죠. 하지만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어지면서 원래 고향인 안동으로 이사를 했죠. 정말 그때는 동네사람 모두 먹고 살기가 힘들 정도로 어려운 때 였습니다.”면서 당시를 회상했다.



이 대표는 기울어진 집안의 장손으로서 살 궁리를 해야 했고, 마침 이발기술을 배울 수 있어 부모님과 함께 생계에 도움을 줄 수 있게 되었다.


오직 먹고 살기위해 시작했던 이발소는 점차 안동시내까지 입소문을 타고 연일 찾아오는 손님들로 바쁘지만 나름대로 삶에 기쁨을 느끼며 가정을 꾸려 나갈 수 있었다.


“이발소 운영만 안동에서 42년을 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아닐지라도 안동시민 전체는 당시 내 손을 두루 거쳐 갔을 겁니다.” 면서 은근히 자랑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만 해도 10여 명의 이발사 직원들을 두고 이발업에 전성기를 보냈죠. 내 직원은 내 가족같이 생각하고 함께 먹고, 생활하며 그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해 주면서 형같이 부모같이 지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게 믿고 따르던 직원들이 당시 유행하던 퇴폐이발소로 하나 둘 떠나가고, 더 이상 이발소를 운영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은 돈도 아니고 사람 때문이었다. 그렇게까지 아껴주고 배려해 줬던 후배요, 직원들이 “죄송합니다”란 한마디로 말로 10여 년 이상 지내온 직장을 옮겼다는 배신감이 너무 가슴을 아프게 한 것이다.



인정받는 삶을 산다는 것!



“사업이 망한 것보다 배신당했다는 사실이 더더욱 괴로웠지만, 저에겐 5남매와 처 그리고 어머니가 계셨어요. 그 동안의 40년 사업을 접고, ‘오직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 는 신념으로 다시 시작하기로 맘먹었습니다. 아직도 저에겐 아버지요, 남편이자 아들로서의 책임감과 삶의 의욕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가족이 목욕탕을 운영하면서 저 또한 이발사로서 성실하게 묵묵히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10여 년 동안을 정말 성실하게 저의 책임을 다하며, 5남매의 아버지로서 인정받는 떳떳한 삶을 위해 노력했어요.”라고 말하는 대표는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스스로가 모범을 보이기 위해 서예를 배우고, 책을 읽으며 집안 전체를 학습 분위기로 만들었고 가정사에도 큰소리 한번 내지 않고 화목하고 정갈한 가정 분위기를 이끌어 왔다고 했다.



“그 덕분인지 공부하란 잔소리 한번하지 않았는데도 자식 모두가 열심히 공부했고, 좋은 학교를 나오고 지금까지도 효자, 효녀로 잘 지내는 것 같아요.”라며 흐믓해 했다.



실제 5남매중 큰 딸은 일본 유학후 문화재관련 사업을 하고 있으며, 둘째 딸은 중국유학 후 교편을 잡았고 셋째 딸은 유명그룹 감사실에 근무하는 박사(학위) 남편과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두 명의 아들들 역시 경북의대를 나온 의사로, 여행사 사장으로 다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70여 년을 한결같이 ‘자식들에게 학비와 병원비만큼은 꼭 책임지는 그런 아버지가 되겠다’는 작은 욕심을 성실하게 실천하며 살아온 대표. 그의 소박하지만 책임감 있는 결심이 5남매 모두의 가슴속에 깃들면서 이젠 남부럽지 않은 건실한 가문을 이루는 기초석이 된 것이다.



제 2의 인생으로 시작한 양봉사업




목욕탕을 운영하면서 탁한 공기 때문일까? 대표의 허약해진 몸은 이내 위암 3기로 발전되었고, 의사인 아들의 조언으로 수술을 하면서 공기좋고 물 맑은 곳을 찾게 되었다.


안동시내를 떠나 선산으로 정해놓은 시골 산속에 조그만 공간을 마련하고, 밭을 일구고 소일을 재미삼아 있은지도 1여 년, 문득 장인어른이 하시던 양봉이 떠올라 벌에 대한 관심과 함께 양봉에 대한 호기심 반으로 양봉을 배워나갔다.



“정말 벌이 사랑스럽고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게 되었어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곳 지형과 환경이 양봉하기에 다시없는 천혜의 장소입니다. 봄이 되면 이쪽 산 전체가 아카시아 꽃으로 수를 놓고 그 향긋한 냄새에 취할 정도입니다.”



암 수술을 통해 제2의 인생을 살겠노라 작심했던 대표는 더욱 자연과 더불어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에 심취해 그렇게 꿀벌과 함께 생활하는 양봉업을 시작했고 벌써 17년째 양봉일에 매진하고 있다.


“봄이면 아카시아 꽃술위에 앉은 꿀벌들이 다리마다 한가득 화분을 묻혀 벌통으로 들락달락하는 것을 보면 정말 신기하고 경이롭습니다. 또한 자연속에서 즐기는 이 생활에 적응하면서 평소 해 보고 싶던 서예와 젊은시절 배웠던 아코디온 등 취미생활에 푹 빠져 지냅니다”



이장용 대표는 한번 맘먹고 시작하면 누가 뭐래도 끝까지 하는 성격인지라 양봉을 시작할 때도 벌의 생태와 좋은 꿀 만드는 법 그리고 효율적인 양봉사업에 관한 책들을 두루 섭렵했고 이를 기반으로 온라인까페를 만들어 지금도 본인만의 노하우를 전국의 양봉업자와 소비자에게 알리는 일을 지속적으로 해 오고 있다.



“변화무쌍한 자연을 들여다보면 신비롭고 경이롭습니다. 돈을 벌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꿀벌 의 생명을 아끼고 애정을 기울이면 당연히 좋은 꿀을 얻게 됩니다. 그 이후에라야 돈을 벌 수 있는 것이죠.”라고 성실과 진정한 마음을 강조했다.



그는 또한 일부 양봉업자들의 불성실함과 비양심적인 행동을 못마땅해 하면서 “꿀을 뜨자면 하루만에라도 벌통을 채울 수 있어요. 하지만 꽃물이 꿀이 되는 과정까지는 7일간의 숙성이 필요합니다. 이를 지키지 않고 대충 빨리 대량으로 만들고자 하는 조급함과 꿀벌에게 항생제를 먹이고, 방사선을 쏘인 중국산 화분을 파는 등의 행위는 진정한 꿀의 효능을 맛볼 수는 없죠.”라며 저렴하게 판매되는 저효능의 벌꿀의 원인을 지적했다.



호기심을 갖고 늘 배우는 자세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바로 이 대표를 두고 하는 말인 듯하다


74세의 고령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것을 배우고 또 배운다. 컴퓨터를 배우고 인터넷을 활용한 카페, 유튜브, 포토샵에 이르기까지 젊은이들 못지않은 노익장을 과시한다.


“요새 젊은이처럼 한 번에 알 수는 없죠, 그래서 몇 번이고 읽고, 듣고 또 배웁니다. 될 때까지...”


이 대표는 서예에 조예가 깊어 초서를 배우고 ‘중운’이라는 아호를 쓰고 있다. 또한 주역을 20여 년간 공부하고, 양봉에 관한 책은 물론 다양한 분야에 연구한 것을 책으로 내기도 했다. “한번은 일본어를 배우는데 전혀 몰라서 약 3년을 배웠어요 그랬더니 우연한 기회에 일본에 초청되어 양봉을 강의할 기회가 생기더라구요. 그때 잘 써먹었죠”라며 웃는다.



주변엔 친구들과 제자들이 많다. 박학다식하지만 겸손하고 성실하며 주변을 돌보는 따뜻한 마음이 친구들을 모이게 한다는 것.


“나에게 스승이란 언제나 묻고 답할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허물없이 묻고 답하는 스승과 제자 사이를 모든 이들과 함께 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좋은 친구들과의 대화속에서 어느 한쪽에 휩쓸리지 않고 삶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그 마음이 젊게 사는 비결” 이라며 100세 인생을 목표로 힘 닿는데까지 양봉업을 계속하면서 질 좋은 벌꿀 양봉연구에 매진하겠다는 이장용 대표.



그는 누구라도 벌을 사랑하는 사람에겐 자신이 강의하고 경험한 노하우를 전수하겠다며 ‘오늘을 충실하게 살자’란 좌우명으로 오늘도 내일도 자타가 공인하는 ‘즐거운 인생’ 을 만끽하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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